알록달록 오색연한빛깔의 예쁘장한 그 사람의 풍선

난 그 풍선을 쥐고 있다.

그것은 마치 비 내린 오후의 하얀 안개처럼

혹은 이제 막 새벽을 여는 스믈건한 햇살의 어스름처럼

뭐라 칭할 수 없는 그 무엇.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그래서 더더욱 그 풍선을 잡고 있는지 모르지.

마치 나를 위해 존재하는 듯 그 하나의 풍선은

내게 오색연한빛깔의 여림과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나에게 혹하듯 아니면 혹하지 않듯 그 무엇도 아닌 듯

살랑살랑 봄바람이 부는 들판의 나른한 오후처럼

아지랑이 피는 동산의 나긋한 풍성함처럼

은근하지만 그러나 은근하지 않는 그 미묘한 느낌으로

더더욱 풍선을 가슴께로 쥐도록 하지.

 


하지만 난 왜 그걸 몰랐을까.

그 풍선은 계속 오르기만 한다는 걸

그 풍선은 벌써 나 아닌 다른 공기를 머금은 걸

아니 다른 공기일지 아님 아무 것도 아닐 진 몰라도

단지 내가 아는 건

그 풍선은 계속 오르려고만 한다는 걸

 


하지만 내겐 오색연한빛깔의 여림과 아름다움을 보여주잖아.

그건 아니

그건 아니

내가 그 풍선의 끈을 잡고 있기 때문일지 모르지.

내가 계속 또 계속 그 풍선의 끈을 잡고 있기 때문일지 모르지.

하늘높이 오르려고만 하는 그 풍선의 끈을

바로 내가 잡고 있기 때문에

내게 그 오색연한빛깔의 여림과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지.

내 가슴께로 끌어당긴

나의, 너를 위한 그 애절함과 그 사연절절함에

그 오색연한빛깔의 여림과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지.

내가 한없이 올라가려는 풍선의 그 끈을 잡고 있기 때문에..

 

 

 

혹 하는 마음에

손가락을 하나, 둘 편다.

새끼손가락부터 중지까지

또 중지에서 검지까지

마지막 하나. 엄지손가락을

그 엄지손가락을

살며시 살며시 열어

 


놓아본다.

 

 

 

내게 오색연한빛깔의 여림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던 그 풍선은

처음에는 머뭇거리듯 마치 편한 익숙함에 절여 있듯

내 손 주위에 계속 머물러 있다가

그만 위로 떠나간다.

 


이제 그 사람이 간절히도 가려하던

그 누군가의 마음의 하늘로 올라간다.

 


다섯 손가락을 편 이유를 난 안다.

지금까지 내게 보여준 그 오색연한빛깔은

내가 지리멸렬토록 놓지 않으려 했던

나만의 착각이란 걸

나만의 애절함임을..

그리고..

 


바로 이렇게 다섯 손가락을 펴서 손 흔들어 이별인사를 하라는 것...

 


 

 

 

 

 

 

기억을 더듬어 그 옛날 어느 해 겨울 동아리 동계MT때로 기억된다.
사람들은 의외로 옛얘기를 싫어한다. 마치 지나간 군대얘기하듯...
하지만 과거는 그립기에 아름답다는 걸 아는지...

 

동계MT로 만난 그 자리에서 어느덧 모든 일정은 끝나가고 마지막 아쉬움의 밤이 찾아왔다.

모두들 동양화 놀이(화투)에 팔려 정신이 혼미해 있을 즈음 동아리 대선배는 술자리의 술안주를 위해 홀로 젓가락으로 고기를 굽고 있었다.

모든 것은 아무 이상없이 잘 돌아가고 있었고 몇 시간만 있으면 동아리 동계MT는 저 먼 추억으로 잠길 운명이었다.

그 즈음 홀로 고기를 굽고 있던 대선배는 불현듯 고개를 떨구며 눈가에 한숨을 맺으며 이런 말을 하였다.

  "이 젓가락을 뒤이을 사람이 없구나......"

아무도 듣지 못한, 누가 이 동아리를 이끌어나갈지에 대한 앞으로의 동아리의 미래를 염려한, 작고 희미한 목소리로 내뱉은 말이었다.

 

순간, 그것은 순간이었다.
그 누구도 그 뒤에 파생되어질 충격을 예상치 못했다.

 

옆에서 고기를 다지고 있던 한 여후배가 갑자기 눈물을 터뜨리며 '오빠 미워!'하며 한 손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가리고 밖으로 뛰쳐나간 것이었다. 정말 순간이었다.

그 대선배는 오빠가 밉다는 여후배의 말에 순간 당황하였지만 그녀의 가슴에 아픔을 준 그 자신이 미워서, 그렇게 만든 그 모든 게 싫어서 눈을 꾹 감은 채 고개를 들었다.

눈가에 고였던 눈물이 고개를 들자 양 볼을 타고 길다랗게 흘러 내렸다.
오열하고 싶었다. 그 모든 게 꿈이길 바랬다. 나만 외로이 여기에 던져진 것 같았다.

 

또다시 한 차례 눈물이 흐르고 부르짖음이 목구멍에서 토해나올 즈음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이가 있었다.

  "선배님. 제가 있잖습니까."

대선배가 고개를 돌려 보자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는 그 사람은 얼굴에 온통 눈물을 흘려놓으며 울먹거림으로 턱이 떨려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동양화 놀이를 하던 후배였다.

 

바로 그 뒤를 이어 함께 동양화를 즐겼던 그 무리들 마저 하나, 둘씩 일어서서 대선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걱정마십..시오. 왜 그런 걱정을 하.흑...."

미처 말을 끝내지 못하고 돌아서서 손목으로, 터져버린 눈물샘을 닦았다.

사실 그들은 대선배의 그 말을 들은 후, 한 손으로 점수를 계산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흘러져 내려오는 눈물을 다른 한 손으로 닦고 있었던 것이었다.

몇몇이 울먹이자 놀이는 중단되고 돌아서서 대선배에게 달려 갔던 것이었다.

 

그런 후배들의 마음씀씀이에 고마워서 대선배는 또 한번 눈물을 지었지만 그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다짐을 하며 말을 하였다.

  "괜찮다. 난 이 동아리를 위해 태어난 것이다. 내가 지금 죽더라도 동아리를 지키는 수호신이 되어 다시 나타날 것이다."
  "선배님!!!"

동양화를 즐겼던 무리들은 바지가 눈물로 얼룩지는 줄도 모르고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눈물을 흘리며 대선배의 품에 안겼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컵차기에 열중하던 무리들도 신발을 벗어 던지며 뛰어와서 안기며 이 감격된 순간을 울음으로 함께 하였다.

  "멋모르던 막내가 자판기에서 커피만 빼먹지 않았어도 함께 했을 것을... 흐흐흑....."

지나가던 동네 주민들도 눈물을 지으며 그 모습을 지켜 보았다.

 

  "자. 후배들아. 울음 그만 그치며 함께 지켜 나가자!"

함께 울었던 많은 사람들이 눈가를 닦으며 울음을 멈추고 울먹거림을 가다듬고는 어색하면서도 의지가 담긴 작은 미소를 지었다.

  "예!!"

모두 한 팔을 높이 들어 힘껏 외쳤다. 여전히 얼굴은 눈물자욱이 남은 채로...

이 아름다운 순간을 지켜보던 동네 주민들이 눈물을 닦으며 박수를 쳐주었다.
그리곤 '파이팅!! 힘내세요!!'하며 외쳐주는 것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향토발전의 역군이 되겠습니다."

우리는 다짐과 웃음으로 답해 주었다.

 

그 날 9시.. 오빠가 밉다며 울먹이며 나갔던 그 여후배는 다시 숙소로 눈가에 눈물이 말라 자욱만 남은 채로 무슨 다짐을 한 듯 그 작은 손을 꼭 주먹쥐고서 돌아왔다.

우리는 말없이 그 여후배를 안아주며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라고 위로해 주었다.
그녀는 말했다.

  "이제야 무언지 알겠어요. 이 동아리를 위해서 제가 무엇을 해야 할 지..."

 그 날 밤 각자 사람들은 누가 먼저 말을 꺼낼 것도 없이 모여선 동기 회의를 열었다.

지금까지 회비 한 번도 안 냈었다며 고백을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느랴 제대로 참석을 못했다며 자신의 장학금을 내놓겠다고 선뜻 흰 봉투를 내미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자리를 가짐으로 그 모든 걸 용서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우리 동아리는 우리 기수가 지켜 내겠다고!!!

 

 그렇게 동계MT의 마지막밤은 미래에 대한 다짐과 열망과 환희로 끝을 맺었으며 그 모든 건 지금 전설로 남아 있다. 80년대 겨울인지 90년대인지도 모르는 가물가물한 기억으로...


 

 

           
[저자의 언(言)...]


여기서의 화자(話者)의 설정은 정확치가 않다. 저자는 단지 구술로 인한 옮김을 할 뿐이었음으로 '정확한 옮김'을 한 건지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리라.
이 글을 실소(失笑)와 허소(虛疎)로 대했든 무관심이었든 상관이 없다.
현실은 충분히, 존재하는 진실됨을 왜곡하였으며 농담과 가벼움으로 가변일도를 달리는 기차와도 같다. 물론 나 또한 현실에 충실코자 그 기차와 한 길을 탈 것이나 왠지 따스함이 사라진 장난스러움만이 남겨진 것에 잠시 한탄하며 다시 나 또한 가벼워지노라...

 

필자가 대학생때 썼던 글인데,

지금 보니 요즘의 대학교 분위기와는 현저히 다른 듯 하네요.

요즘 분위기를 반영하지 못한 점은 양해바랍니다.

 

 

 

 

안녕하십니까. 우리 대학생 여러분.

오늘도 산업의 놀음꾼이 되어 퇴얕볕 내리는 휴게실에서 이름 모를 간식을 먹느랴 수고 많으십니다. 자꾸만 좁아져만 가는 용돈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책값을 아끼지만 결국 모든 걸 술로 바치시느랴 많은 회의를 느끼시리라 생각됩니다. 아무쪼록 오늘도 좋은 술자리 참석하시길 빕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전번에 저의 비꼬기 논단에서 쓰레기 논조에 관해 X X 대학생 무작위 100명에 대한 조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가 수집되었습니다. 주변에 쉽게 마주칠 수 있는 반가운 쓰레기들에 대한 출처 조사와 과연 어떤 분들이 이런 선행을 하시는지에 대한 밀착조사를 몇 일간 실시하였으며 그에 대한 짤막한 결과를 여러분들께 보여드리고자 하는 바입니다.
 
쓰레기와 관련된 조사는 각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비공개로 조사하였으나 이런 좋은 일을 하고도 왜 이름이 실릴 수 없냐고 항의하는 몇몇 사람들은 나중에 따로 공개하도록 하였습니다.

첫번째로, 대학생들이 바닥에 즐겨 버리는 쓰레기의 종류에 대한 조사를 하였습니다.

  

    1위 : 담배꽁초 (22.8%)

    2위 : 종이류 (18.4%)

    3위 : 종이컵 (15.2%)

    4위 : 음료수캔 (6.6%)

    5위 : 휴지 (12.3%)

    6위 : 과자봉지 (17.2%)

    7위 : 기타 (7.5%)


여전히 담배꽁초가 1위로 올라섰고 그 뒤를 잇는 종이류가 담배꽁초를 위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전의 판도를 뒤엎고 과자봉지가 신세대의 취향에 맞게 상위층을 향해 다가서고 있습니다. 예전의 비해서 부진을 면치 못하는 음료수캔은 규모의 방대화로 인해 버리기에 아깝다는 인상을 남겨주는 것 같습니다. 음료수회사는 제품을 생산할 시 내용물에 대한 충실도 뿐만 아니라 디자인에도 더욱 더 신경을 써야 할 듯 싶습니다.

 

종이컵의 경우에는 예전의 2위 자리를 박탈당한 채 하위에서 맴돌고 있는데 그것은 고학번들의 건전한 대학문화인 컵차기 문화가 저학번들에게 전파되지 못한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종이컵의 소요가 상대적으로 감소한 이유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담배꽁초가 1위에서 2위와 별다른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은 이 안타까운 현상에 대해선 학교 당국의 무차별적 금연지역 선포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로 인하여 담배꽁초를 버릴 권리를 박탈당한 학생들은 상하 이동 쓰레기장인 엘리베이터안 구석진 곳에 항의의 표시로 담배꽁초를 끼워놓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을 준비하고 있지 않는 무책임한 학교의 처사로 인해 더 넓은 공간에서 쾌적하게 담배꽁초를 튕겨 버릴 수 있는 권리가 어느 정도 축소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밖에 기타에는 아무거나 손에 쥔 것은 가리지 않는다는 응답과 종이를 갈기 갈기 찢어 하나씩 버리는 걸 좋아한다는 개성적인 응답도 있었습니다. 역시 신세대다운 생각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설문지를 받자마자 구겨서 바닥에 던져버리는 선행을 직접 행하는 바람에 설문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분의 설문자료는 구할 수 없었지만 설문을 하는 순간에 일어난, 미소가 절로 퍼지는 선행으로 인해 설문시간이 무척 흐뭇했습니다.

 

 별도로, 어떤 학생은 기타를 버려서 기타를 체크했다는 울지못할 저능수준을 보여줬습니다만 그래도 선행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두 번째로,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릴 수 있게 된 그 계기에 대해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1위 : 무의식적으로 (47.7%)

    2위 : 쓰레기는 바닥에 버리는 거니까 (32.1%)

    3위 : 주위 추천 (10.5%)

    4위 : 휴지통이 없어서 (5.2%)

    5위 : 기타 (4.5%)


역시 요즘 학생들은 무의식적으로 선행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특별한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옛말에도 나이가 들면 어떤 행함에도 부자연스럽지 않고 도덕에 어긋남이 없다는 바로 그 경지에 오른 듯 보입니다.


그리고 옳은 일에 대해 떳떳하게 그러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많은 학생들의 용기에 또한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전체의 10.5%는 주위에서 선행을 베풀어라는 덕담으로 실천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예부터 덕담은 서로 건네면서 도와주는 거라는 선조의 말씀을 아직까지도 신세대들에게까지 고이 남겨져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휴지통이 없다는 것은 물론 역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부당국의 무책임한 쓰레기통 배치로 곳곳에 유혹지대의 쓰레기통이 널려 있음으로 학생들이 쉽게 유혹당하여 자칫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릴 수 있으나 우리의 학생들은 힘겹게 마다하며 올곧게 바닥에 버릴 수 있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의 학교 곳곳에 쓰레기를 치우시는 아주머니에 대한 인식을 조사해보았습니다.

  

    1위 : 관심없음 (52.4%)

    2위 : 식당아주머니요? (22.1%)

    3위 : 직업인 (17.7%)

    4위 : 기타 (7.8%)


높은 비율인 52.4%로 관심없음이 선정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점심을 배부르게 먹은 후 맛있는 과자와 음료수로 끼니를 연명하는 불쌍한 학생들에게 인생은 참으로 고달프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의실에서 어제 술마시느랴 못다한 잠을 청하는 고달픈 인생의 학생들에게 학업은 그만큼 더많은 힘이 들리라 생각됩니다. 자신의 일에 대해서 너무도 많은 고민을 하느랴 주위에는 조금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미래의 놀음역꾼인 되실 여러분들의 권투를 빕니다.

 

두 번째 응답 또한 자신의 인생이 고달프기 때문에 식당아주머니와 혼돈을 일으키는 안쓰러운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하루 빨리 학교 당국에서는 전체 학생들에 대한 의무적 정기검진 계획이 세워졌으면 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몇몇 경영대 학생들은 우리들이 바닥에 쓰레기를 버리는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그로 인한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짐으로 사회에 일념하는 양성적 기능을 한다는 경영대다운 발언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어떤 학생들은 자신의 소중한 정보가 아주머니로 인해 유출되지 않을까 하는 정보화 시대의 정보 보안에 대한 투철한 의식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짤막하다면 짤막한 비꼬기 논단에서의 쓰레기 논조에 대한 얘기를 하였습니다. 이렇게까지 비꼬아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현실에 대해 땅을 치고 목놓아 한탄하고 싶군요.

 

 

 

                                           리얼타임 - 리타블로그

 

 

 

 

Front)
창작은 참 어렵고도 위험스럽다.
특히 자기만족같은 창작은 더더욱 위험스럽다.
개똥인지 소금인지 구별이 안되기 때문이다.

 

 

 

 

□ 제목 : e-메일

 

 

 

 

 

안녕.
오늘은 또 어떤 하루를 보낼까?
여긴 전산실이야.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니 생각이 나서 이렇게 몆 자 적을려고 들렀어. ^ ^
저번에는 집에 잘 갔는지 걱정되더라.
밤이 좀 깊어서 걱정했었는데 집에 잘 갔다는 연락 받고 안심이 됐지.
연락해줘서 고마워.
난 그냥 씻고만 있었는데 잘 들어갔다는 연락을 해주니까 정말 고맙더라.
넌 정말 좋은 아이같아.
아직 마니 만나지는 못했지만 좋은 느낌이 들어.
그리고...


그 때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세게 내리치는 바람에 난 깜짝 놀란다.

“야. 뭐하냐! 빨리 가자. 진석이 생일날에 니가 빠지면 안되지.
애들 다 모였으니까 빨리 지금 나와라. 지금 뭐 메일 쓰냐?“
“아.. 아니.. 알았다.”

난 허둥지둥 지금까지 작성해 놓은 메일을 ‘임시저장함’에다 담아놓고 컴퓨터를 끄고 전산실을 나섰다.
마무리를 짓지 못한 게 내심 마음에 걸렸지만 다음에 와서 마무리를 짓겟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왠지 씁쓸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윽고 왁자지껄 술판이 벌여지고 술집은 온통 우리들의 고함소리로 나누는 대화로 인해 나머지 모든 건 오히려 고요한 듯 느껴졌다.
처음 맥주를 어느 정도 마시고 온 우리였기 때문에 소주가 입으로 털어 들어가자 맥주와 소주의 혼합작용은 극에 달하게 되었다.
하지만 몇 몇 술이 세다고 자청하는 놈들은 여전히 시시껄렁한 얘기를 목청 높여 외치고 있었다.

“야. 저번에 걔 있자나. 내가 미팅한 그 애 말이다.”
“응. 근데 왜?”
“그 애 날 차고 콧대높은 척 하다가 내 옆의 친구를 몰래 찍어서 따로 연락한 거 아니겠냐.”
“야.. 천하의 진석이가 차일데도 있단 말이냐. 나가 죽어라. 하하.”
“근데 말이다. 내 친구도 완전 그 앨 비참할 정도로 찬 거 아니겠냐.
한번만 만나달라는데도 그냥 찼다 하더군. 이야.. 결국 잉과응보 아니겠냐. 하하.”
“그보다 니가 차인 게 쪽팔린다. 야. 벌주다. 한 잔 쭉 들이켜라!”

나도 친구들 틈에 끼여서 웃고 있다가 많이 취기가 도는지 자꾸만 고개가 스르르 숙여지는 거였다.

“야. 저 녀석. 왜 그러냐? 술된거 아니냐?”
“아. 아냐. 나 술 안됐어. 말짱하단 말이다”

난 그 말을 하고 그냥 의자위에다 머리를 박고 쓰러지듯 엎어졌다.
그리곤 난 맥주에다 소주를 마셨는지 소주에다 맥주를 마셨는지 그 생각에 빠지면서 멍히 계속 의자위에서 꼬꾸라져 있었다.
의자위에 머리를 올려놓은 채 누워서 멍히 탁자밑에 가려진 시커먼 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술집에 오면 으레 연인들이 장난하듯 하는 낙서 몇 개를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멍히 보았다.
뭐라 써 놓은건지. 희미해서 잘 보이지도 않는.. 누가 이런 곳에다 낙서를 한..


‘이혜진 ♡ 박진환’

난 그저 멍하니 눈을 떠 그 글자를 두 번, 세 번, 네 번째 읽고만 있었다.

‘이혜진 ♡ 박진환’

다섯 번째 읽었을 때 난 너무도 놀라서 커진 눈을 감지 못하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의 이름 박진환. 그녀의 이름 이혜진.
그녀의 이름 이혜진. 잊혀졌던 그 이름 이혜진..
난 커다랗게 떠진 눈으로 여덟 번이고 아홉 번이고 열 번이고 계속해서 그 글자를 읽었다.
우리 만난 지 1년을 축하하며 여기 술집에 들러 바로 이 구석 자리에 앉아 그녀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날.
그녀가 무얼 할 게 있다며 고개를 숙여서 탁자 밑 벽에다 끄적 끄적 낙서를 하던 날.
그녀가 괜한 기분에 술을 많이 마셔서 그녈 업고 집으로 데려다줘야 했던 그 날..

난 하나도 잊지 않고 있었다.
난 그 글자를 계속 계속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한 여름인데도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걸 느꼈다.
이혜진..
레몬소주. 머리핀. 푸우. 냉면. 이른 새벽. 코코아. 파아란 양산. 메일주고받기. 하얀 원피스...
난 그녀가 좋아했던, 그리고 그것들과의 여러 기억들이 한순간 내 가슴안으로 밀려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정지해버렸다.
이미 11시를 넘겼지만 주위 소리는 아무 것도 들을 수가 없었다.
오로지 난 그 한 글자로 인해 온갖 모든 기억들이 다시 살아나는 걸 온몸으로 감수해야 했다.
착한 사람이었지.
그래. 착했어..
내가 그녀를 차버린 순간에도 엄청 날 걱정했었어.
마지막 날이 나의 기억위로 오버랩 되자 내 머릿속은 온통 폭풍우에 휩싸이는 커다란 바다가 되어버렸다.
아직.. 아직.
아마도.. 아직..

난 미칠 정도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나도 모르게 이미 눌려져 있는, 내 손가락이 벌써 알아버린 그녀의 번호가 눌려진 폰화면을 보면서,
그러나 난 차마 ‘통화’ 그 한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이 굳게도 ‘종료’ 버튼을 눌렀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통화를 누르고 바로 종료를 눌렀다는 게 옳을 것이다.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날 어쩌면...
그 때 왜 내가..

난 거의 포기한 듯 아랫입술을 짙게 깨물고는 의자위에 머리를 툭 내려놓았다.
눈을 감으면 어둠속에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눈을 뜨면 그 글자가 아련거려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이렇게 자포한 듯 의자위에 기대있는 날 한 친구가 끌어냈다.

“야. 집에 가자. 다들 뻗어서 이게 뭐하는 거냐..”
“어. 어.. 그래..”

난 탁자를 잡으며 일어서서는 멍하니 지갑을 꺼내서 돈을 내고는 친구들과 헤어져서는 어둠속에 파묻히며 터벅터벅 집으로 향했다.

하나도 잊지 않았다.
그토록 잊었다고 생각했건만 그 기억들을 단지 잊었다고 생각했을 뿐 아무것도 잊혀진 게 없었다.
마치 어제 그녀를 만나서 헤어진 것처럼 생생하게 모든 게 떠올랐다.
이젠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시하고 지낸 시간들이 이렇게 아무렇게나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렇게도 잊었다, 잊었다 했었지만 난 결국 하나도 잊지 못하고 이렇게 마음속에 갖고 있었던 거였다.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었던 거였다.
너의 눈빛, 너의 향기, 너의 느낌 그 모든 걸..

난 집에 도착해서는 습관처럼 컴퓨터를 켜서 메일을 확인하고 새편지가 오지 않은 걸 확인하고 컴퓨터를 끄려다가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편지쓰기’를 눌러 한 글자, 한 글자 서투르게 적어나갔다.

 

음...
그게.. 말이지..
음.. 잘 있는지..
참 많은 시간이 흘렀구나.
너와 헤..어지고 나서 음.. 참 많은 시간이 흘렀어.
흘렀어.
..잘 있는지.. 나.. 난 잘 있어.
여전히 난 똑같지. 거의 다를 게 없잖아.
훗훗. 그 친구는 여전히 나와 함께 있어.
같이 만나서 너도 마니 친했었잖아.
그 때 생각하면 정말 웃기는데 말야. 훗.

후. 또 이렇게 예전 버릇처럼 말을 하게 됐구나.
이젠 정말이지 고치겠다고 했는데 여전히 똑같구나. 후.
그래. 그렇지 뭐. 내 버릇이 어디 갈 리가 없지.
말하면서 뜸들이지 말라고 했었지.
너와 만나면서 정말이지 고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 지키기도 전에 이렇게 멋쩍은 사이가 됐구나.

후~~ 그래. 난 잘 있고..
그냥 잘 있는지 해서..
음..
그리고 ...
어제..
친구 생일이라고 해서 학교앞 술집에 갔었어.
거기서 무얼 보게 되었는데..
그게..


난 더 이상 글을 잇지 못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널 차버리고 나서 무슨 염치로 이렇게 너에게 이런 얘기를 한단 말인가.
그 때 너에게 그러고 나서 어떻게..

난 멍히 지금까지 적어 논 글을 ‘임시저장함’에 저장해 놓고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 마우스를 옮겨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시저장함’을 열어 보았다.

그 안에는 수없이도 다짐한 보내지 못한 ‘임시메일’이 수십통도 넘은 채로 쌓여 있었다.

‘받는 이’는, 한결같이 똑같은 그 사람 이름.. 이혜진...

그리고 이어서 새편지가 지금 도착했다는 연락..

방금 ‘보낸 이’는 요즘 들어 새로 만나고 있는 그 애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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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진...

 

 

 

 

 

 

 

 

 

 

 

 

 

 

 


여기에서의 ‘나’ : 누차 알겠지만 제 3의 소설속의 인물

 

 

 

“잘 들어가~ 안녕!!”

 

환한 웃음을 내보이며 손을 흔든 뒤 그녀가 버스를 타는 걸, 아니 타고 저기 멀리까지 - 보이지 않을 때까지 - 가는 걸 본 후 입술을 한번 굳게 다물면서 돌아선다.
감정은 바로 깊은 침묵으로 휩싸인다.
‘휴우-’ 하는 길다란 한숨을 내뱉은 후 집으로 향하는, 커다랗게 진열되어 있는 좌석버스에 올랐다.
집에 도착하려면 족히 2시간은 걸리겠다.
차가 막힐 것도 예상해야 했다.
오후 내내 흐렸던 날씨 때문인지 어둠이 금방 짙게 내려앉았다.
머리를 의자위로 기대어 지긋이 눌렀다.

 

오늘 그녀와 보냈던 일들을 회상했다. 아니 정리했다 라는 말이 옳겠다.
그 때 내가 무리하게 말을 몰아 붙였군. 그게 맞다고 맞장구를 쳤으면 됐을 일을.
나는 하나, 하나 행동들을 꺼내어 심판대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떡볶이를 시키고 나서 아무 말을 하지 않아서 좀 썰렁한 분위기가 되었었지.
그 때 저번에 외웠던 그 얘기를 해줬음 됐을 걸.
그런 분위기는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말야.
하긴, 그래도 커피 마시면서 몇 번이고 웃고 그랬으니 그거는 만회한 셈이지.
한심하게도 난 행동 하나 하나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아직 난 그녀를 세 번째로 만난 거였으니 만남에 대해 세세히 행동 하나 하나까지 생각할 만도 하였다.
후훗. 역시 그녀는 웃는 모습이 가장 예쁘지. 누가 봐도 말야.
근데 오늘은 별로 웃지 않았어. 분명 재미있는 얘기였는데도 반응이 별로였어.

 

<부정적 접근 발전>
그래. 하긴 얘긴 재미있는 얘기였는데 내가 별로 재밌게 하지 않아서지.
아니, 그것보다 그냥 얘기를 듣지 않았던 거 같아.
하긴 이번도 내가 만나자고 만나자고 해서 겨우 힘들게 나온건데 그냥 내키지도 않게 나온 자리에 뭐가 기분좋다고 웃고 그러겠어.
그러고 보니 결국 이번도 내 의지로 인해 나온 거였군.
정말 나한테 관심이 있긴 있는 걸까.
그냥 내가 내키는대로 하자고 하니까 그냥 따라만 한 게 아닐까.
어휴.. 그냥. 그래. 다 내가 만든거고 내가 하란대로 한거야.
내가 연락 안하면 연락하지도 않지.
말도 별로 하지도 않고 나를 만나서 좋아하는 거 같지도 않고.
하긴 내가 뭐가 대단하다고.
휴. 힘들군.
말자. 그냥 말자.
오늘의 만남을 끝으로 그냥 끝내버리자.
원래 만남은 세 번까지 해봐야 안다고 그랬는데 결국 보니까 별로 나하고 맞지도 않는 거 같았어.
속시원하네. 그냥 연락 안해야겠다.
그게 낫겠다.
잘됐어!

 

바깥의 풍경들은 맑은 수채화처럼 흐려지더니 한 방울, 한 방울 빗물들이 창문을 타고 비스듬히 흘러내린다.
그러더니 장대비처럼 우수수 빗방울들이 창문벽에다 투명한 방울세례를 쏟아낸다.

 

비가 오는군.
그녀는 지금 집에 도착했을까.
피식 그냥 웃음이 나온다.
그래. 요즘 시험기간이라서 많이 바쁘다고 하던데..
나와준 거만으로도 고맙지..
비가 많이 오는데 버스에서 내릴 때 비맞겠네. 우산도 안 가져왔다던데..

 

<긍정적 접근 발전>
그러고 보니 난 우산을 가지고 왔구나.
(비를 맞고 뛰어가고 있을 그녀가 떠올라진다)
훗. 웃긴 놈이지. 고작 그거 가지고 그런 맘을 품다니..
그냥 편하게 생각하면 될 걸 가지고 말야.
훗. 그 애는 비를 맞아봐야 돼. 그래야 담에는 우산을 챙길 거 아냐.
담에 만날 때는 꼭 우산부터 갖고 오라고 해야겠다.
쨍쨍 햇빛이 내리쬐는 날에는 예쁜 양산을 갖고 오라고 해야겠다. 내가 들어줘야지. ^ ^
다시 입가엔 미소가 지어진다.
저기 버스 입구에는 방금 내린 비를 맞고 흠뻑 젖은 채로 들어온 커플 한 쌍이 서로를 보며 웃으며 장난을 치고 있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폰을 아주 익숙한 손으로 움켜쥐고는 문자를 찍는다.

 

‘지금밖에비마니오
는데집에잘들어갔
어? 오늘마니즐거
웠고담에또보자.‘

 

보통우편 선택을 누른 후 멀리 사라져 가는 메일 그림이 ‘전송하였습니다’로 바뀌는 걸 보면서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훗. 결국 나도 어쩔 수 없는 놈이군. 연락하지 않겠다고 해놓고서..
기껏 다진 마음도 한순간에 바꾸고 헤 하고 웃고나 있으니 이래서 정말 무어가 될는지 정말 한심하지 않을 수 없군.
맨날 이런 식이지.
나쁜 것도 똑바로 나쁘게 볼 줄 모르고 내 식대로 판단해버리고 정확한 현실도 판단 못하고 우물안 개구리처럼 꿈속에서 만든 세상에서 평생 살런지!

 

<부정적 접근 재발전>
시간은 어느덧 흘러 버스에서 내린 나는 비가 그친 거리를 걸으면서 이번에야말로 정말 그녀가 내게 있어 무언지 확실히 확인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냥 물흐르듯 이리 저리 시간만 보내고 그러다 잊혀질 게 아니라 정말 확실하게 나에 대한 감정이 무언지에 대해서 알아낼거야.
갑자기 대화중에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내게 한 말이 생각이 난다.
‘이제는 제가 연락할게요.’
평소 같으면 그냥 예사롭게 넘어갔을 그 말이 갑자기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연락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닌가.
내가 자꾸 연락을 하니까 자기가 연락할 때까지 연락하지 말라는 말이 아닌가.
훗~ 그 얘기였군. 왜 인상을 지으며 내게 얘기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군.
그리고 나는 문자를 보낸 지 오랜 시간이 되어 살며시 호주머니에 있는 폰을 꺼냈다.
안테나 6개가 떠있고 건전지는 2계단까지 충전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문자가 오지 않았다. 1시간은 엄청 넘었는데 말이다.
그렇지. 그렇지. 그래. 내 말이 맞았어.
끝내자!

 

나는 잠자리에 누워서 멍히 하늘을 바라보다가 이내 이불을 확 덮어쓰고는 두 눈을 꾹 감다가 놓으면서 ‘차라리 잘됐다’ 하는 짧은 목소리를 입술 깨물면서 내뱉는다.

 

잠결에 ‘딩~~’ 하는 진동음이 짧게 한 번 울리는 걸 듣는다.


새벽 1시였다. 자는데 누가 문자를 보낸거야.
찌푸린 눈을 가느랗게 떠 쓰린 눈으로 폰화면을 본다.

 

‘죄송해요.^^;폰
약이떨어져서급히
충전하고봤어요.
저도무지즐거웠어
요.오늘비가마니오‘

 

연속으로 또 한 문자가 올라온다.

 

‘던데비맞지는않으
셨는지.. 전별로맞
맞지않았어요.고마
워요.^^
담에 또 봐요~‘


살며시 웃고 있는 내가 느껴진다.

 

 

PS)
처음 서로의 감정을 확실히 알지 못할 때 수많은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죠.
그러면서 가끔은 오해가 생기고 소리없이 멀어지기도 하고 혹은 다행히 가까워지기도 하고
아직 많이 정들지 않은 상대방을 집으로 보내고 나서 생각이 들 여러 반전들을 적어봤습니다.
예전에 적었던 글을 다시 옮겨 봤는데 새로운 느낌이 드네요.

 


 

 

 

 

 

 


분명 지금 거하게 술을 먹었음이 분명하다.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오징어가 부드러운 솜사탕처럼 느껴지는 걸 보니 정말 난 술을 거하게 먹었음이 틀림없다.

조금 있으니 누군가가 병에 물을 따르고는 나에게 먹으라고 내민다. 난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냥 내가 아는 사람일 거라는 안심만 든다.


내가 그 물을 마시니 또 다시 난 더욱 거해진다.
필히 그건 물이 아니라 소주임에 분명하다... Distilled Liquor..

맥주를 시켜서 오징어가 나온 줄 알았는데 누군가가 소주를 시켰는가 보다.
그런데도 별로 반응이 없다. 이미 난 물이 오른 오징어처럼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다.

술집에서 일하는 학생이 와서 무어라고 그런다.
난 이미 횡설수설해서 무슨 말을 하는 지 모른다.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말소리가 너무 커서 소리를 줄여달라고 한다.

난 ''그래? 그럼 그러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난 고개를 푹 숙인채 아까부터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냥 멍히 아까부터 계속 그 오징어만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

 

 

입술이 차갑다. 누군가가 나에게 술을 먹이는가 보다. 아니, 그 팔은 내 팔이었다. 난 가만히 있는데 팔이 내게 술을 먹인다. 아니, 내가 팔에게 술을 먹였다.

조금 더 있으니 가슴속 깊은 곳에서 응어리가 터져 나올 거 같다.
한번도 생각지도 않았던 응어리가 나올 거 같다. 술기운이 돌구나.. 하고 화장실을 가려는 순간 난 그게 아니란 느낌이 들었다. 오바이트가 아니라 가슴속 깊이 묻혀 있었던 응어리...

중얼중얼.. 아까부터 계속 ''응어리.. 응어리..''만 중얼거린다고 한다. 시끄럽다고 그만 하라고 한다.
하지만 왠지 모를 응어리는 그걸 말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징어가 날 덮쳤다. 날 하나도 알지 못하는 오징어가 날 덮친 데 대해 나는 격분해 있었다. 목에 걸린 오징어 때문에 컥컥 대며 헛기침을 해댔다. 컥컥..

컥컥컥... 그 순간 그 목에 걸린 오징어 대신 응어리가 쏟구쳐 나왔다.
한순간에 응어리가 내 한없이 풀어진 두 눈을 통해 쏟구쳐 나왔다. 주루륵 흐르는 눈물을 그냥 관망한 채 천장을 응시했다. 눈물은 계속 되었다. 멈추지 않았다.

난 내 귀로 듣는다.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말을 하는 것을...

 


"나는 무엇인가..."

 


 

 

 

제목 : 잃어버린 가방을 찾다.

 

 



 

 

  


"큰일났어! 큰일났어!"
"왜? 무슨 일인데 그래?"
"가방이 없어졌어. 분명 내가 도서관 의자에 두었는데 말야.
강의실에도 없고 도서관 어디에서 없어. 분명 도서관 의자에 걸친 거 같았는데 말야."

여자동기는 거의 울 지경이었다.
온통 사방엘 헤매고 다닌 듯 숨소리는 거칠었고 다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거의 자포자기한 듯 멍한 눈으로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해결책이란 더 이상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를 난 정말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어이. 아가씨! 아가씨!"
"왜?"
"너 뭐하냐!"
"왜 그러는데?"
"니 등에 메고 있는 건 뭔데? 나하고 장난하는 거여?"
"어? 잠시만..."

그녀는 자기 등으로 손을 뻗더니 금방 환한 미소로 안면을 바꾸더니 연신 기쁜 소리를 지르며 좋아한다.

"와! 이제 드디어 내 가방을 찾았다! 고맙다. 정말 고마워!"

난 단지 그녀등에 매달린 가방만을 보았을 뿐이다.
그건 누구라도 금방 눈에 알아챌 수 있는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얼마나 웃긴 일인가. 가방을 메고 온 곳에서 가방을 찾으려 했으니..

 

 

 

 

사실 현실적으로 위와 같은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
내가 꾸며낸 허구세계이자 엄청 어색하고 비이성적인 연출된 상황이다.
하지만 한가지 알아 둘 사실이 있다.
그 사실을 밝히기 위해 이제 다시 원고수정을 해보자.


그녀가 등에 맨 것은 가방이 아니라 그녀가 찾고자 했던 고민거리의 해결책이라고 하자.
이제 다시 얘기가 시작된다.

그녀는, 아니 우리는 자신의 등에 해결책을 달고 다닌다.
그리고는 항상 해결하지 못한 삶의 문제와 고민거리들로 어두침침한 한밤중의 불꺼진 유흥가를 온통 서성거리거나 헤매며 산다.
때로는 술에 의지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떤 일에 몰두함으로써 잃어버린 해결책을 잊고 살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거리가 더욱 커질수록 그 끈은 더욱 조여지고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며 고통을 준다.
마치 바로 너의 등뒤에 내가 있으니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다는 걸 노골적으로 알려주듯이...

하지만 우린 그걸 깨닫지 못한다.
너무도 쉬운 해결책이 등뒤에 붙어서 어깨에 고통을 주면서 알려주는데도 단지 자신이 그 문제로 인해 겪게 되는 당연한 고통쯤으로 안다.
너무도 가까이에 있는 해결책을 잡지도 못한 채 분명 어딘가 멀리에 꼭꼭 숨어 있을 거라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다.
난 원래 평소에도 해결책을 저 멀리 먼 곳, 숲 깊은 산, 맑은 물이 흐르는 어느 돌멩이밑 흙더미에서 찾곤 했었는걸요.. 라고 말한다.

 

결국 주변사람이나 어딘가에 도움을 요청하고 나서야 우리는 그들과의 오랜 대화나 혹은 우리 개개인만의 깊은 상념을 거친 후에 드디어 그 문제점의 해결점을 찾게 된다.
바로 너의 뒤에 있잖아! 라고 말이다.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지금까지 등에 메고 있었다는 그 웃기지 않는 사실에 얼굴 붉혀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문제가 풀렸기 때문에 그런 생각까지 미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우리는 등에 무엇이 있었는지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
모조리 다 잊게 된다.
정말 거짓말처럼..

그리고 술집에서나 혹은 커피숍, 공터의자에서 친구 혹은 동료의 등에 메고 있는 해결책들을 손가락으로 콕콕 찍으며 손을 등쪽으로 내밀어 보라고 자신있게 말해준다.

"거기 있자나. 자식! 내가 보긴 훤히 보이는데? 그것도 모르냐?
그러니까 내가 하란대로 하면 니 고민거리는 금방 풀린다구.
쉽지? 담에도 뭐 안풀리는 거 있음 물어봐. 다 말해줄게."
"고맙다. 정말 고맙다. 이제 한결 기분이 풀린다. 니가 하란대로 해볼게.
역시 넌 고민 해결사야!"

우리는 친구의 고마워하는 말에 의기양양해져서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러다 갑자기 어깨에 통증이 오는 걸 느낀다.
요즘 점점 커지고 있는 그 문제 때문에 생긴 고통이라고 어렴풋이 추측한다.

그 문제 때문이군. 휴...
어떻게 해야 제발 처음으로 돌릴 수가 있을지..
아니.. 괜찮아. 괜찮아. 모두 다 잘 풀릴거야. 그 문제는 나중에 생각해야겠다.

 

등에 커다란 해결책을 가득 맨 채로...

 

 

 

 


 

제목 : 너무 친한 그대

 

 

 

 

 

 

 

안녕하세요.
저 아시겠어요. 물론 아시겠죠. 정말 잘 아시겠지요
하루가 멀다하고 만나고 또 만나는데 어떻게 저를 모를 수 있을까요.
왠 높임말이냐고 놀리시겠네요.
어제까지만 해도 안녕 하면서 만나서 웃고 미소짓고 헤어졌는데 왠 높임말이냐 하겠지요.
그냥 말을 높여서 하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저를 이해하세요.
그냥 오늘은 그러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얘가 왜 그럴까 생각하지 마시고 편하게 이 글을 봐주세요.

 

 

 


요즘은 잘 지내고 있는 거 같네요.
항상 만나는 그대 모습에 환한 미소가 번지는 걸 보니 제 마음까지 편안하게 느껴져요.
요즘 무슨 좋은 일이 있는가 봐요.
그렇군요.
제가 미처 그걸 몰랐네요.
저번에 그대가 제게 하신 그 얘기가 정말 맞나봐요.
제가 그렇게 하란대로 하셨나 봐요.
봐요. 제가 하란대로 하니까 그 사람이 그대에게로 돌아오잖아요.
축하해요.
이제야 그대 얼굴에 미소가 하나, 두울 살아나네요.
전 정말 연애학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에요.
하하. 그러고 보니 제 연애에는 전혀 도움이 안되네요.
고맙다는 얘기는 하실 필요가 없어요.
전 원래 그런 얘기하길 좋아하니까요.
솔직히 그대가 그 사람과 헤어졌다며 제게 울먹이며 얘기할 때
전 그대가 그렇게 슬퍼하는데 안타까웠어요.
위로라도 하고 싶었죠.

 

 


아니. 아니에요.
그게 아니에요.
모르셨겠죠.
그대의 이별에 제가 같이 슬퍼해야 했을까요.
아니에요.
이번에야말로 제가 그대에게 고백을 해야 하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을 했어요.
아님 아직까지도 우린 그저 우리라는 사실에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그냥 무의식처럼 그대에게 중얼거렸지요.
이건 이렇게 해라. 저건 저렇게 해라.
남자를 대할 땐 너무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냥 체념하지 말고 한 번 더 연락을 해봐라...
하하.
전 그렇게 미소지으면서 그대를 다독거렸죠.
제 맘은 그런 게 아니었는데 말이죠.


그런 저의, 그대에게 무엇이든 베풀고픈 고운 맘을 그대는 하나라도 읽을 수가 있었나요?
제가 그대에게 바라는 이 작은 하나의 소망에도 그대는 귀기울여 들여줄 그 작은 마음이라도 갖고 있었나요?
혹시 혹시 하는 저의 그대를 향한 너무도 커다랗게 꿈틀거리는 그 마음을 혹시라는 마음에 눈치라도 챌 그 정도의 추측은 한번이라도 좋으니 해본 적이 있었나요?
그대의 그 맑고 투명한 두 눈을 바라보면서 저를 바라봐 달라고, 좋아해 달라고, 제발!! 제발!! 이라고 외치는 나의 고함소리를 그 미세한 떨림이라도 좋으니 들을 수 있도록, 한 쪽의 귀라도 좋으니 조금이라도 열어놓을 수 있었나요?
하루에도 수백 번 그대의 뒷모습을 쉴새없이 바라보며 또 바라보며 한번이라도 뒤를 돌아봐 달라고 마음속으로 외고 또 외는 저의 주문을 어느덧 지나가는 새의 지저귐처럼 들어버리는 그 마음의 안테나라도 조금이라도 세울 수 있었나요?


당황스러울 거에요.
갑자기 이런 얘기를 퍼붓듯 얘기하는 나를 보며 '얘가 왜 이러나?' 싶겠죠.
그래요.
이게 바로 저의 마음이에요.
아직 한번도 말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끙끙 앓고만 있었던 그대를 향한 저의 마음이에요.
차마 말은 하지 못했죠.
그러면 그대는 떠나가잖아요.
이렇게라도 곁에 머물러 있으니 저는 그대 모습은 매일 볼 수가 있잖아요.
이렇게라도 너무 친한데 그 이상 무얼 바라냐고 저에게 수없이 다그쳤어요.
말을 못 했어요.
말하는 순간 그 순간이 바로 그대와 제가 평생 이별하는 날이 될테니 그 날이 언제가 될지 마음 졸이며 그 날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니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말하지 않기로 했지요.
하지만 그대는 저에게 보란 듯 다시 그 남자를 만나게 되었지요.
그대가 행복하기 때문에 제가 행복할까요?
그런 대중가사 같은 착각을 그저 현실에까지 받아들이라고요?
그대가 그 사람을 떠올리며 미소짓는 모습에 제가 그에 보답하듯 환한 미소를 지으라고요?
그러면 제 모습이 얼마나 초라할까요?
그 사람의 전화에 기뻐하는 그대를 멍히 바라보는 저의 눈길이 얼마나 초라할까요?


물론 그래요.
제가 그대가 다시 그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도움을 줬으니 말이죠.
전 '고마워' 라는 그 말만이라도 듣고 싶어서 그런 것뿐인데 전 정말 바보같은 놈이죠.
하지만 다시 그 사람의 전화가 그대에게 왔다는 그 말을 듣고 전........
전..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대와 그 사람과의 이별을 달래주려 그랬던 것뿐인데,
재회를 하게 되었다는 그대의 말을 들으며 전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제가 무슨 생각을 했었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지 그대는 정말 그대는 하나도 정말 하나도 알 수가 없었겠죠..
단지 아는 건 그것뿐이었겠죠.
그 사람의 전화가 왔다는 사실.
멍하니 고개를 들어 학교에 있는 커다란 거울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어요.
전 그대와 둘도 없이 친한데 너무도 친한데 그렇게도 친한데 왜 이럴 수 밖에 없는지 저 자신을 봤어요.
그래요.
이제는 알겠어요.
제가 왜 이럴 수 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겠어요.

그대는 저를 보면서 이렇게 부르기 때문이죠..

 






친구야..

 

 

 

 

 

 

 

맞는 말이다.

재미없는 글이지만 소설도 써본다.

소설을 쓰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현실에서는 2~3가지의 인생을 살 수 없으니 가상으로라도 상상의 나래로

여러 다양한 삶 또는 인생을 살아보고 싶어서다^^

 

아래는 예전에 끄적여 썼던 글인데 기록삼아 남겨본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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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그는 물밀듯이 밀려오는 일거리들을 해결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그가 맡은 부문은 '제 231 태양계 지구행성' 지역이었다.
그가 하는 일은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지만 생각외로 엄청 복잡하고 중요한 일이었다.
그는 뒤로 불규칙하게 길게 늘여져 있는 줄을 보고는 일어서서 줄 똑바로 서라고 크게 외치고는 '다음!' 이라고 말하며 새로운 영혼의 일거리를 받았다.
"음.. 어쩔 수 없구만. 자네는 아프리카 오지에서 인간으로 태어나야겠어. 그러니까 앞으로 1시간후에 이 서류를 들고 저쪽으로 가보게. 그러면 아마 어느 천막에서 태어나게 될걸세."
그 영혼은 불평스럽게 무엇을 중얼 중얼거리다가 그가 '다음!'이라고 외치며 무관심하게 다른 서류를 점검하자 그냥 멀뚱히 그를 빗겨져 어디론가 간다.
그렇다. 그는 '제 231 태양계 지구행성'으로 선정된 영혼들에게 최종 결정지를 내려주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심사 한마디에 모든 영혼들은 자기가 가야 할 길들을 찾아서 가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는 단지 여기 '제 231 태양계 지구행성'만을 맡았을 뿐이다.
여러 다른 직원들은 이 곳 소울매니지먼트센터에서 각각의 영역을 맡아서 자신에게 할당된 영혼들을 각각의 목적지로 가도록 선정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휴. 요즘엔 정말 일하기가 싫단 말야."
"왜 그래? 지구행성에 인간종족이면 얼마나 수월하냐."
"허허. 그것도 잠시 몇 천년 일이지. 요즘은 정말 영혼을 보낼 만한 데가 없단 말야."
"그런 걱정은 하지도 말아. 제 21 테이프론계 영역을 맡아봐. 다들 영혼들이 기겁을 한단 말야. 안 갈려고 서로 난리야. 난리."

옆의 동료와 얘기하는 것도 잠시 바로 다음 차례의 영혼이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음.. 자네는.. 어.. 좋은 데로 가게 되었군."
"예? 진짜입니까? 고맙습니다."
"음.. 먼저 인간으로 선정되었는데 영국지역에 음.. 부모들도 다 멋있고 아름답군. 허허. 자네. 여자로 태어날건데 정말 예쁘게 태어나겠어. 돈도 어느 정도 있는 집안이고.. 남자들 깨나 울리면서 살겠군. 잘 살아보게."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 영혼이 기뻐 날뛰며 다른 곳으로 나가자 그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모든 결정권을 진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이런 최상의 조건으로 지정된 영혼이 자신에게 감사하다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도 같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솔직히 이런 행운은 모두에게 비추는 것은 아니었다.
간혹 가다가도 내가 말하기에도 정말 민망한 정말 나쁜 조건을 가져야 하는 영혼에게는 미안함이 먼저 앞섰다.
어깨를 축 늘여뜨린 그 영혼에게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무어라고 할 말이 없었다.
특히나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어머니를 여의게 되는 영혼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그는 바로 사적인 감정을 지웠다. 일에는 언제나 엄정함이 요구되는 것.
더군다나 각자 자신의 그런 나쁜 조건에 운명을 걸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리라고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뒤에서 우물쭈물하던 한 영혼을 향해 빨리 앞으로 다가오라고 크게 외쳤다.
"빨리 앞으로 와!"
"어.. 안녕하십니까."
"음.. 자네 자료를 함 보자. 음.. 허.. 정말 이거 미안하게 됐네."
"예? 이번에는.. 무슨.."
"거.. 잠시 14일정도만 여기 내려가 있다가 다시 오면 되거든. 그렇게 하게나."
"어딘데 그러는데요?"
"음.. 인간으로 태어날건데.. 엄마가 미혼모야. 고등학생인데. 이거.. 임신중절을 하게 될 거 같거든."
"예? 그럼 거기서 잠시 있다가 오라고요? 저번에는 제 2차 세계대전 시기에 걸려서 21살의 나이로 죽었지 않습니까?"
"내가 그랬나? 다음에는 괜찮은 데로 보내주지. 이번만 참아주게."
"흐.. 내가 내려가서 바로 가위질을 당한다면 그 둘을 가만 안 둘 겁니다."
"그러지는 말게. 잠시 웅크리고 있다가 오면 될걸세."

흐.. 정말 못할 짓이로군.
그는 요즘들어 더욱 제 231 태양계 지구행성영역의 일들이 거칠어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가 맡은 영역에서 새로 이 곳으로 송출되는 영혼들의 숫자가 계속적으로 증가한다고 상부로부터 많은 질책이 있었다.
그리고 제 231 태양계 지구행성은 지금 인간들의 엄청난 포화상태로 지역할당에도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더군다나 그가 보내준 영혼들이 그 영역들을 엉망으로 망가뜨려서 그렇지 않아도 줄고 있는 행성의 수명을 엄청나게 단축시키고 있는 게 아닌가.
신물난다. 나도 잠시 휴식을 취해야 할텐데 말인데.
"어이. 혹시 어디 좋은 데 없나? 나도 잠시 다른 데 살다가 오고 싶은데."
"은퇴할려고 그러나?"
"아니. 그냥 잠시 쉬고 싶어서 말야."
"안 그래도 말야. 요즘 '제 231 태양계 지구행성'에 대해서 위에서 말이 많아. 원래 주어진 운명의 시간보다 더욱 앞당겨서 '행성폐지작업'을 시행한다는 말도 있고 말야."
"어쩔 수 없지. 나도 이번 기회에 다른 영역을 맡거나 재고부서에 한 번 기웃거려봐야겠어."
"음.. 그것보다.. 제 11521 싸이트런계 레인종족으로 한번 살아보게나. 거 다들 부러워하는 그 곳 있잖아."
"그 곳? 거 웬만한 영혼들은 구경하기도 힘든 그 '신들의 파라다이스' 그 곳 말인가?"
"그래. 너는 뭐 경력도 남들보다 많겠다. 그 정도면 상부에 신청하면 보내줄거야."
"알았네."

그는 반복되는 일상속에 따분하게 영혼들 목적지나 선정하는 일에는 정말 신물이 났다.
그래서 그는 일이 끝나는대로 바로 '제 11521 싸이트런계 레인종족' 영역 센터로 가서는 신청서 1부를 요청하였다.
"어이. 왠일인가? 자네가 왠일로 이런 곳엘?"
역시 제 11521 싸이트런계 담당 직원답게 의자에 푹 편하게 기대어서 엄청 느긋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앞으로 오는 모든 영혼들도 모두 설레임으로 가득차 있었다.
"휴가 신청했는데 그냥 함 200년 정도 살다가 다시 올까 싶어서.. 신청하면 가능하겠지?"
"그럼. 당연하지. 물론입죠. 그럼 어떤 정도의 수준에 보내줄까?"
"우리의 친분을 생각해서 가장 최상으로 해줘." (웃음)
"걱정도 팔자려니. 여기 레인종족은 다들 행복해서 죽을 지경이야. 더 이상 좋은 곳도 없어. 그럼 즐거운 시간 되길 바라네."
"그래. 고맙네. 잘 있게나."

그는 몇 가지 준비물을 챙기고는 어느 정도 마음가짐을 다지고 기화통로로 향했다.
이미 앞에 한 영혼이 들어갔었는지 기화통로에는 하얀 연기가 엄청나게 흩트려져 있었다.
그가 기화통로에 들어가자마자 온몸을 휘감고 도는 기화통로의 연기로 인해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그리고 세상을 무에서 유로 창조하는 한 줄기 강한 빛이 그의 머리 중앙으로 내려왔다.
어느 순간 그는 머리가 급속도로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그 찰라 바로 의식을 잃게 된다.

눈을 뜬 순간 주위에는 어둠만이 가득한 채로 오로지 맥박이 뛰는 것만을 느낀다.
너무도 어두워서 내 팔이 달렸는지, 아니 팔이 없이 발이 네 개가 달린 건지, 아님 그 무엇이 되었는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단지 그는 그 곳이 너무도 편안하고 아늑한 곳이라는 것만을 느낄 수 있었다.
간간히 벽을 타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아마도 그건 '우리 아가 잘 자거라..' 하는 자장가의 목소리일 것이다.
그는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 이 곳이 바로 '신들의 파라다이스..' 11521 싸이트런계 행성.

이제 나는 제 11521 싸이트런계 레인종족으로 200년을 살다가 가는 것이다.




나에게 죽음은 없다. 인생은 잠시 쉬었다 가는 휴식처일 뿐.

사소한 것에도 고통받는 어리석은 영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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